2011.11.14] [강원음식엔 스토리가 있다] 10. 인제 용대리 황태 - 강원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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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구이
▲ 첫 덕장 개설 최규철 씨. / 첫 식당 개업 연영숙 씨.
▲ 겨울 인제 용대리 덕장. 본사DB
▲ 황태국
<혹한 산골 눈보라와 인간의 지극한 정성이 빚어낸 맛>
<천혜 진부령서 4개월 얼었다 녹았다 반복…전국 생산량의 70% 차지>
인제 용대리 사람들은 눈·비가 와도 일을 한다. 황태 덕장의 덕을 매는 것부터 채 뜯고 포 만들고 포장하는 일까지 과정마다 손길이 간다. ‘황태 한 마리 30명이 뜯어 먹는다’는 말이 있다. 노인회관에 모여 화투치는 노인들이 없다. 70~80대도 일을 한다. 일자리는 많고 사람은 없다. 용대리에는 다른 농촌지역보다 젊은이들도 많다. 황태의 힘이다.
# 황태의 길
황태는 명태로 만든다. 명태 이름은 조선 후기 문헌 ‘송남잡지(松南雜識)’나 ‘임하필기(林下筆記)’를 보면 함경도 명천(明川)사람 태(太)모 씨가 북쪽바다에서 잡아 도백(道伯)에게 바친 데서 붙었다고 한다.
명태를 말린 황태는 북어와 비슷하다. 북어는 바닷바람에 그냥 말린 것이고, 황태는 혹한의 진부령이나 대관령에서 녹이고 얼리기를 3~4개월 반복해 건조한 것이다. 북어는 살이 딱딱하고 매끈하고 하얗다면, 황태는 살이 부드럽고 보풀보풀 부풀어 오르고 노란색을 띤다.
1961년 초겨울 최규철(72)씨는 용대리 산골짜기에 명태를 처음 덕장에 걸었다. 군 제대 후 인근 얼음공장에서 제빙을 하던 최 씨는 거래처인 고성 거진의 한 상회 주인에게서 솔깃한 말을 듣게 된다. 상회 주인은 함경도 출신이었다.
“인제 용대리가 엄청 추우니 거기 명태를 걸면 잘 마를 것이오.”
최 씨는 요령이 없었다. 생물을 드럼통에 담았다가 그냥 꺼내 얼렸다. 두름 (20마리를 묶은 것)채로 걸었다. 봄이 되니 귀한 명태들이 다 썩었다.
1~2년 후 ‘원산 아바이’가 용대리에 왔다. 원산 아바이는 방식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개울을 막고 고기를 담가 염분을 뺀 후 다음날 건져 물지게로 져서 덕장으로 옮겼다.
최규철 씨도 원산 아바이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렇게 인제 용대리 황태의 역사가 시작됐다.
최 씨는 “처음에 개울에서 고기를 꺼내 걸 때 긴 장화도 없었고 우비도 안 입고 일하다 보니 한겨울에 온몸이 꽁꽁 얼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황태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음식이다. 초겨울에 영하 20~영하 30도 정도에서 생태는 한번 꽝- 언다. 초기에 제대로 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영하 1~2도에서는 속까지 얼지는 않는다. 그러다 다시 영하 20도가 되면 깊이 언다. 그렇게 얼고 녹는 과정이 겨우내 반복되지만 속까지 어는 횟수는 몇 번 되지 않는다. 수분이 한꺼번에 빠지지 않고 맛이 푹신푹신하게 익어간다. 10월부터 덕장을 엮기 시작해 12월 중순부터 말린다. 얼고 녹고 얼고 녹기를 4월까지 한다.
마른 황태를 따서 잘 덮었다가 2마리 씩 끈으로 꿰어 창고에 넣었다 판매한다. 예전엔 두름으로 값을 매겼고 지금은 10마리를 기준으로 한다.
최규철 진부령덕장 대표는 “용대리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다른 지역에서 명태를 말리면 물기가 단번에 쭉 빠져 바로 먹태가 되어 버린다”며 “용대리 황태는 자연이 만든 맛”이라고 말했다.
개울을 막아 씻는 것은 명태 내장 특히 ‘애’ 기름 때문에 환경 문제가 제기됐다. 개선책으로 콘크리트로 막아 폐수가 흐르는 것을 방지했지만 냇물에 고기를 씻는 것은 여전히 오염의 근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10년 전부터는 고성·부산 등지에서 할복하고 손질해 씻은 고기를 가져와 냉동고에 넣었다 곧장 덕장에 건다.
덕장 1칸에 130급이 들어간다. 1급은 20마리이다. 6000평 덕장은 1000칸이 넘어 대략 15만급 정도를 말린다. 용대리 일대에 대덕(15만급 이상의 큰 덕장) 5곳을 포함해 10여 곳의 덕장이 있다. 겨우내 생산되는 용대리 황태는 최소 3000만 마리이다. 전국 황태 생산량의 70%이다.
“국민들이 모두 용대리 황태를 먹어보겠다고 줄을 서면 한 마리씩만 먹어도 20% 부족해요. 아는 사람만 먹는 귀한 음식이지요” 최규철 씨의 뒤를 이어 2대째 진부령 덕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종국(43) 사장의 말이다.
# 황태의 맛
산에서 나물 뜯고 감자와 옥수수 심어 먹던 궁벽한 산촌. 용대리 사람들은 황태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났다.
연영숙(59) 씨는 35년전 용대리에서는 최초로 황태 식당을 열었다. 옷가게, 과일가게, 가축업 등을 하다 쓴맛을 본 그녀의 가족은 품값을 받고 위탁건조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틈틈이 토종닭을 길러 식당에서 팔았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 황태 잔 뼈를빼고 두드려 가공한 후 황태구이와 국을 메뉴로 삼아 판매를 하게 됐는데 반응이 좋았다.
“처음 식당을 열었을 때는 사람 구경하기 힘든 편이었어요. 차 한 대만 와도 반가워서 식구 대하듯 푸짐하게 음식을 냈지요. 음식 값은 주는 대로 받았어요.”
전라도 출신인 그녀는 손맛을 제대로 낼 줄 알았다. 언론에 보도가 되고 인근 스키장에 손님이 몰리기도 하면서 입소문이 퍼졌다. 1990년까지만 해도 황태 전문식당은 연 씨의 식당 한 곳뿐이었다. 그러다 한곳 한곳 식당이 생기기 시작해 현재는 100여곳에 이른다.
연영숙 사장에게 황태 요리의 비결을 물었다. “한결같음과 정성” 무심한 듯한 대답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답이지만 무심하게 ‘정성’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은 식당에서도 ‘빨리빨리’를 외친다. 그런데 황태요리는 기다림이 필요한 음식이다. 황태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지난하지만 황태국도 사골 고듯이 푹 끓여야 한다. 그녀는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맛을 고집한다. 그러다보니 고유의 맛을 고스란히 느끼기 위해 몇십년 넘게 찾는 단골이 많단다.
황태의 새로운 맛은 다른 식당에서 많이 개발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넉넉한 마음일 것이다. 그녀의 바람에 부합해 동네의 식당들은 찜, 조림, 탕수육, 돈가스 등을 개발해 냈다. 황태요리는 20가지가 넘는다.
연영숙 씨의 용바위식당서 황태구이와 국을 맛보았다. 황태구이는 붉은 양념장에 노란 속살이 살짝 드러나 있어 보는 순간 군침이 돌았다. 더덕구이를 닮았다. 맛은 고소하고 살에 탄력이 있다.
구이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황태를 물만 묻혀 비닐봉지에 약 1시간 싸뒀다가 꺼내 자근자근 두드려 껍질과 뼈를 없앤 후 물에 약간 불려 짜놓는다. 양념장을 골고루 바른 후 24시간을 기다린다. 프라이팬에 은박지를 깔고 콩기름을 두른 후 굽는다.
황태국은 뽀얀 색으로 설렁탕이나 곰탕 비슷하다. 그냥 북어국보다 맛이 깊고 개운하다.
국은 황태를 물에 불려 짜놓는 것까지는 구이와 동일하다. 짜놓은 황태를 적당히 찢어서 냄비에 넣고 들기름과 물을 약간 넣고 약 30분간 은근히 끓여 먹을 사람의 수만큼 물을 붓고 감자나 무, 콩나물 등을 넣고 다시 끓인다. 가장 나중에 마늘, 후추를 약간 넣고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파를 띄워 먹는다.
4차선 곧은길이 뚫렸음에도 관광객들은 속초로 곧장 달리지 않고 꾸준히 용대리에 들른다. 매년 봄 황태가 수확될 시기에 맞춰 2월말~3월초에 황태축제도 연다. 올해는 구제역으로 연기돼 5월에 열었다.
김창옥(50) 용대3리 새마을지도자는 “올해는 작년보다 방문객이 소폭 줄었지만 궂은 날씨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여 내년에는 많이 찾아줄 것으로 전망한다”며 “작년에 지리적표시제를 등록해 품질 좋은 진부령황태의 특화된 맛으로 승부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이동명·박주석
자문: 한명희 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 교수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 첫 덕장 개설 최규철 씨. / 첫 식당 개업 연영숙 씨.
▲ 겨울 인제 용대리 덕장. 본사DB
▲ 황태국
<혹한 산골 눈보라와 인간의 지극한 정성이 빚어낸 맛>
<천혜 진부령서 4개월 얼었다 녹았다 반복…전국 생산량의 70% 차지>
인제 용대리 사람들은 눈·비가 와도 일을 한다. 황태 덕장의 덕을 매는 것부터 채 뜯고 포 만들고 포장하는 일까지 과정마다 손길이 간다. ‘황태 한 마리 30명이 뜯어 먹는다’는 말이 있다. 노인회관에 모여 화투치는 노인들이 없다. 70~80대도 일을 한다. 일자리는 많고 사람은 없다. 용대리에는 다른 농촌지역보다 젊은이들도 많다. 황태의 힘이다.
# 황태의 길
황태는 명태로 만든다. 명태 이름은 조선 후기 문헌 ‘송남잡지(松南雜識)’나 ‘임하필기(林下筆記)’를 보면 함경도 명천(明川)사람 태(太)모 씨가 북쪽바다에서 잡아 도백(道伯)에게 바친 데서 붙었다고 한다.
명태를 말린 황태는 북어와 비슷하다. 북어는 바닷바람에 그냥 말린 것이고, 황태는 혹한의 진부령이나 대관령에서 녹이고 얼리기를 3~4개월 반복해 건조한 것이다. 북어는 살이 딱딱하고 매끈하고 하얗다면, 황태는 살이 부드럽고 보풀보풀 부풀어 오르고 노란색을 띤다.
1961년 초겨울 최규철(72)씨는 용대리 산골짜기에 명태를 처음 덕장에 걸었다. 군 제대 후 인근 얼음공장에서 제빙을 하던 최 씨는 거래처인 고성 거진의 한 상회 주인에게서 솔깃한 말을 듣게 된다. 상회 주인은 함경도 출신이었다.
“인제 용대리가 엄청 추우니 거기 명태를 걸면 잘 마를 것이오.”
최 씨는 요령이 없었다. 생물을 드럼통에 담았다가 그냥 꺼내 얼렸다. 두름 (20마리를 묶은 것)채로 걸었다. 봄이 되니 귀한 명태들이 다 썩었다.
1~2년 후 ‘원산 아바이’가 용대리에 왔다. 원산 아바이는 방식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개울을 막고 고기를 담가 염분을 뺀 후 다음날 건져 물지게로 져서 덕장으로 옮겼다.
최규철 씨도 원산 아바이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렇게 인제 용대리 황태의 역사가 시작됐다.
최 씨는 “처음에 개울에서 고기를 꺼내 걸 때 긴 장화도 없었고 우비도 안 입고 일하다 보니 한겨울에 온몸이 꽁꽁 얼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황태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음식이다. 초겨울에 영하 20~영하 30도 정도에서 생태는 한번 꽝- 언다. 초기에 제대로 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영하 1~2도에서는 속까지 얼지는 않는다. 그러다 다시 영하 20도가 되면 깊이 언다. 그렇게 얼고 녹는 과정이 겨우내 반복되지만 속까지 어는 횟수는 몇 번 되지 않는다. 수분이 한꺼번에 빠지지 않고 맛이 푹신푹신하게 익어간다. 10월부터 덕장을 엮기 시작해 12월 중순부터 말린다. 얼고 녹고 얼고 녹기를 4월까지 한다.
마른 황태를 따서 잘 덮었다가 2마리 씩 끈으로 꿰어 창고에 넣었다 판매한다. 예전엔 두름으로 값을 매겼고 지금은 10마리를 기준으로 한다.
최규철 진부령덕장 대표는 “용대리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다른 지역에서 명태를 말리면 물기가 단번에 쭉 빠져 바로 먹태가 되어 버린다”며 “용대리 황태는 자연이 만든 맛”이라고 말했다.
개울을 막아 씻는 것은 명태 내장 특히 ‘애’ 기름 때문에 환경 문제가 제기됐다. 개선책으로 콘크리트로 막아 폐수가 흐르는 것을 방지했지만 냇물에 고기를 씻는 것은 여전히 오염의 근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10년 전부터는 고성·부산 등지에서 할복하고 손질해 씻은 고기를 가져와 냉동고에 넣었다 곧장 덕장에 건다.
덕장 1칸에 130급이 들어간다. 1급은 20마리이다. 6000평 덕장은 1000칸이 넘어 대략 15만급 정도를 말린다. 용대리 일대에 대덕(15만급 이상의 큰 덕장) 5곳을 포함해 10여 곳의 덕장이 있다. 겨우내 생산되는 용대리 황태는 최소 3000만 마리이다. 전국 황태 생산량의 70%이다.
“국민들이 모두 용대리 황태를 먹어보겠다고 줄을 서면 한 마리씩만 먹어도 20% 부족해요. 아는 사람만 먹는 귀한 음식이지요” 최규철 씨의 뒤를 이어 2대째 진부령 덕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종국(43) 사장의 말이다.
# 황태의 맛
산에서 나물 뜯고 감자와 옥수수 심어 먹던 궁벽한 산촌. 용대리 사람들은 황태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났다.
연영숙(59) 씨는 35년전 용대리에서는 최초로 황태 식당을 열었다. 옷가게, 과일가게, 가축업 등을 하다 쓴맛을 본 그녀의 가족은 품값을 받고 위탁건조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틈틈이 토종닭을 길러 식당에서 팔았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 황태 잔 뼈를빼고 두드려 가공한 후 황태구이와 국을 메뉴로 삼아 판매를 하게 됐는데 반응이 좋았다.
“처음 식당을 열었을 때는 사람 구경하기 힘든 편이었어요. 차 한 대만 와도 반가워서 식구 대하듯 푸짐하게 음식을 냈지요. 음식 값은 주는 대로 받았어요.”
전라도 출신인 그녀는 손맛을 제대로 낼 줄 알았다. 언론에 보도가 되고 인근 스키장에 손님이 몰리기도 하면서 입소문이 퍼졌다. 1990년까지만 해도 황태 전문식당은 연 씨의 식당 한 곳뿐이었다. 그러다 한곳 한곳 식당이 생기기 시작해 현재는 100여곳에 이른다.
연영숙 사장에게 황태 요리의 비결을 물었다. “한결같음과 정성” 무심한 듯한 대답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답이지만 무심하게 ‘정성’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은 식당에서도 ‘빨리빨리’를 외친다. 그런데 황태요리는 기다림이 필요한 음식이다. 황태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지난하지만 황태국도 사골 고듯이 푹 끓여야 한다. 그녀는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맛을 고집한다. 그러다보니 고유의 맛을 고스란히 느끼기 위해 몇십년 넘게 찾는 단골이 많단다.
황태의 새로운 맛은 다른 식당에서 많이 개발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넉넉한 마음일 것이다. 그녀의 바람에 부합해 동네의 식당들은 찜, 조림, 탕수육, 돈가스 등을 개발해 냈다. 황태요리는 20가지가 넘는다.
연영숙 씨의 용바위식당서 황태구이와 국을 맛보았다. 황태구이는 붉은 양념장에 노란 속살이 살짝 드러나 있어 보는 순간 군침이 돌았다. 더덕구이를 닮았다. 맛은 고소하고 살에 탄력이 있다.
구이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황태를 물만 묻혀 비닐봉지에 약 1시간 싸뒀다가 꺼내 자근자근 두드려 껍질과 뼈를 없앤 후 물에 약간 불려 짜놓는다. 양념장을 골고루 바른 후 24시간을 기다린다. 프라이팬에 은박지를 깔고 콩기름을 두른 후 굽는다.
황태국은 뽀얀 색으로 설렁탕이나 곰탕 비슷하다. 그냥 북어국보다 맛이 깊고 개운하다.
국은 황태를 물에 불려 짜놓는 것까지는 구이와 동일하다. 짜놓은 황태를 적당히 찢어서 냄비에 넣고 들기름과 물을 약간 넣고 약 30분간 은근히 끓여 먹을 사람의 수만큼 물을 붓고 감자나 무, 콩나물 등을 넣고 다시 끓인다. 가장 나중에 마늘, 후추를 약간 넣고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파를 띄워 먹는다.
4차선 곧은길이 뚫렸음에도 관광객들은 속초로 곧장 달리지 않고 꾸준히 용대리에 들른다. 매년 봄 황태가 수확될 시기에 맞춰 2월말~3월초에 황태축제도 연다. 올해는 구제역으로 연기돼 5월에 열었다.
김창옥(50) 용대3리 새마을지도자는 “올해는 작년보다 방문객이 소폭 줄었지만 궂은 날씨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여 내년에는 많이 찾아줄 것으로 전망한다”며 “작년에 지리적표시제를 등록해 품질 좋은 진부령황태의 특화된 맛으로 승부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이동명·박주석
자문: 한명희 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 교수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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